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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서울여행] 서울, 얼마나 알고있나요?

 

방쌤의 서울여행 


서울여행 / 서울 가볼만한곳

서울박물관 / 경희궁 / 박물관투어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을 찾아가려 네비게이션으로 검색을 해보니 경희궁에는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가 않고, 서울역사박물관의 주차장을 같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당연히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르는 생각 하나, 경희궁을 한 번 둘러보고 나온 뒤에 박물관도 꼭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것이 바로 그 것이다. 원래 박물관 구경을 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다음에 계획하고 있는 여행들 중 하나에는 '서울 박물관투어' 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생각보다 사전 조사도 많이 필요하고 둘러보는데 시간도 꽤 많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지만 다음에 3-4일 정도 쉬는 날이 생기면 꼭 떠나보고 싶은 여행이 바로 박물관투어이다. 예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머리 속에도, 또 사진으로 남겨놓은 자료들도 거의 다 날아가버린 상황이라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남은 것도 같다

 

 

 

 

 

주차장을 돌아서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입구. 크리스마스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버렸지만 아직도 블링블링한 트리가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듯한 기분이다. 물론 저 아이들이야 나에게 전혀 관심도 없겠지만 늘 이렇게 혼자 노는 것에 나도 모르는 사이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어떻게 고치지도 못 할 정도로 중증의 상황이라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도 않는다

 

 

 

관람시간은 평일은 8시 까지, 주말이나 공휴일은 7시 까지이다. 쉬는 날에 더 빨리 마치는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관람시간은 넉넉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서울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주차이다. 까딱 잘못하면 2만원에 달하는 주차비를 지불하게 되는 곳들도 있으니 반드시 사전에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최초 2시간은 3.000원이지만 그 이후로는 시간당 5천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만약 경희궁이랑 박물관을 모두 꼼꼼하게 둘러보느라 4시간 정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게 되면 주차비는 13.0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오게 된다

 

 

 

 

이미 지나간 크리스마스인데도 괜히 사람을 기분좋게, 또 설레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로비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기념품 가게. 예전에는 꼭 한 두개씩 사가지고 왔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심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기념품을 사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없는 편이다

 

 

 

 

내가 갔을 때는 로비 옆 전시실에서 '설날특선영화' 에 관한 사진들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티비도 많이 없었던 시절, 또 티비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만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늘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설날과 같은 명절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지금은 다양한 매체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 열기가 많이 식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설날특선영화' 라는 이름은 사람을 설레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잘 모르는 극장들의 이름이지만 서울에 오래 사셨던 분들이 보시면 옛 기억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지도 한 장이 아닐까 싶다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귀여운 친구들

 

 

 

 

크리스마스

이유는 모르지만 괜히 따스함이 느껴지는, 마냥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 내가 꼭 보고 싶은 것은 3층 상설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조선시대 부터 개항, 일제강점기와 고도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변해온 서울의 모습이다. 도시모형영상관도 너무 궁금했지만 일단은 아까부터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변화해온 서울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3층으로 올라간다

 

 

 

 

서울, 오늘 그리고 내일...

너는 조금 있다가 따로 만나도록 하자. 잠시 빠이!

 

 

 

 

박물관이...

참 이쁘다...

ㅡ.ㅡ;;; 촌놈...

 

 

 

 

드디어 오늘의 메인 타겟인 3층 상설전시실에 도착

 

 

 

 

조선시대의 서울 그 500년의 왕도를 세우다!

 

첫번째 섹션에서는 조선 건국 후 한양 정도부터 개항 이전까지 조선시대의 서울을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한양의 육조거리와 시전을 중심으로 북촌, 중촌, 남촌, 그리고 성저십리에 걸쳐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수도 한양의 건설

1394년 태조가 한양 땅에 새 도읍지를 건설하여 500년 왕도가 탄생하였다. 도읍지는 우리의 옛 전통과 풍수지리, 그리고 유교적 이념을 겸비하여 건설하였다. 얼마 전에 직접 걸어보았던 성곽은 전통에 따라 산세에 의지하여 건립하였고, 주례에 나오는 좌조우사의 이념에 맞추어서 굴궐과 함께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였다

 

좌조우사 : 도성을 건설할 때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두는 것을 이르는 말

 

 

 

 

 

 

 

서궐도

조선의 궁궐은 처음에는 경복궁 하나였는데 태종이 새로 창덕궁을 지으면서 두개의 궁이 운영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창덕궁과 경희궁이 건설되면서 전기처럼 양궐체제로 운영되었다. 이후 1868년에 경복궁이 중건되고 고종이 덕수궁에 살게 되면서 조선의 궁궐은 창경궁을 포함해서 모두 5개가 된 것이다

 

서궐도라는 것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궁궐, 즉 경희궁의 전각 및 궁궐의 전경을 그려놓은 궁궐 배치도이다. 내가 얼마 전에 다녀온 그 경희궁이랑 같은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그 모습에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비녀와 노리개 정도는 겨우 알겠는데 항아리? 들의 용도는 사실 잘 모르겠다. 설마 술병?ㅡ.ㅡ;;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한양의 북쪽 마을, 북촌

북촌은 뒤로 백악산에서 용봉으로 흘러가는 산자락을 기대고 앞으로는 개천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는 한양 최고의 권세가들인 경화사족들이 살기도 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성리학적 질서를 추구하고 대의명분을 중시하였는데 18세기 중반이 되면서 청나라의 문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육조거리

육조거리라는 말의 의미는 조신시대의 이. 호. 예. 병. 형. 공조의 육조 관아가 이 길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오늘날의 세종로로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 광화문사거리) 까지 이어지는 대로이다. 이 거리의 동쪽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가 있었고, 서쪽에는 예조.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쪽에 있었던 한성부는 도성 사람들을 관리하고 도시시설을 설치. 운영하는 곳으로 행정과 사법의 기능을 동시에 가진 기관이었다

 

 

 

 

 

 

 

 

 

 

 

 

조선 제일의 번화가, 운종가

운종가라는 말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였다가 또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있었던 거리의 이름인데 지금의 종로 사거리를 중심으로 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일대에는 국가에서 지은 시전이 있어서 서울의 대표적인 상점가가 되었고 거리의 중심에는 종루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길의 양 옆으로는 여섯개의 큰 상점인 육의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중촌은 개천을 충심으로 지금의 청계천과 종로 일대이다. 이 곳에는 통역관인 역관, 의사인 의관, 볍률가인 율관 등 전문직 관리, 관청에서 근무하는 서리인 경아전,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한양의 기반, 남촌

남촌은 목멱산(남산)의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남촌에는 청렴한 선비가 많았고, 명문가도 여럿 있었다. 또한 목멱산에는 국경지대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수대가 있었으며 아름다운 풍광 덕에 이름난 정자도 많이 있었다. 얼마 전에 직접 다녀오면서 보고 온 그 아름다웠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골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이 한양에 들어오면서 처음 보고 놀라는 것이 숭례문이었다. 숭례문은 1395년에 짓기 시작해서 1398년에 완성한 한양 도성의 남쪽 성문이며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렀다. 이 숭례문을 통해서 한양과 조선팔도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양에 들어오는 10개의 길 중에서 삼남 지방과 이어진 5개의 길이 이곳을 지나갔다. 숭례문부터 서울의 중심부인 종루까지는 일찍이 대로가 건설되었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강상업

한양은 생산인구가 많이 거주하지 않는 소비 중심의 도시였기 때문에 물길을 따라 옮겨야하는 물건들이 당연히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물동량이 많아지자 자연히 조선초기부터 서울 인근의 한강변에는 많은 상인들이 집결하였다

 

경강이란 한강 중에서도 서울을 감아 도는 부분을 가리키는데, 구체적으로는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인데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해상과 수상교통의 전국적인 중심지이자 상업발달의 메카로 자리를 잡았다

 

 

 

 

개울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도 한 판 두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막걸리까지 한 잔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이제는 개항기의 서울을 만나러 떠나는 시간. 아픔이 많았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너무도 자 알고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서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개항, 대한제국기의 서울

서울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새 바람을 도아보는 공간이다. 자주적 개혁을 위한 노력과  식민지화를 위한 압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상생활에 파고든 새로운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여러 공사관들이 밝게 불을 밝히고 있는 아래의 안내판. 바로 저 자리가 덕수궁이 있던 바로 그 자리인데... 일제강점기 기간동안 그들이 구간별로 나누어 모두 판매를 한 결과 저렇게 외국의 여러 공사관들에 덕수궁이 마치 둘러싸인 듯한 형상이 되고말았다

 

 

 

 

서울을 전통과 근대가 함께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바꾸어가려 하였지만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서울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대한제국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환구단의 모형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처음 환구단은 3단으로 건립되었는데, 1901년에는 하단 10m가량 축소를 해서 중건하였다. 하지만 처음 조성된 단지는 일본군에 의해서 1913년 모두 철거가 되고 이듬해 그 자리에는 철도호텔이 들어섰다.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서 웨스턴조선호텔 내에 남아있다

 

 

 

 

도성 내부의 구조를 일본군이 통치하기에 적합한 모습으로 개조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성벽처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남대문의 북쪽 성벽을 헐러버리고 숭례문, 서소문, 동대문 부근의 성벽과 청계천을 지나는 오간수문, 소의문, 돈의문, 혜화문 등 성문과 성벽들을 차례로 철거하였다. 조선의 정통성은 부정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모습이 남아있던 서울을 천천히 파괴하기 시작했다

 

 

 

 

쌀 17가마에 팔린 서대문

보수공사에 들이는 돈아 아까우니 철거하라는 동소문

 

불과 100년 전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청계천 남쪽에 있는 토지의 대부분이 일본인에게 넘어갔고, 충무로와 남대문로가 교차하는 지점에는 일본영사관, 경성우편국, 조선은행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일본인 거주지의 중심이 되었다. 이 무렵 일본인이 많이 사는 청계천 이남을 남촌, 그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는 관행이 생겼다. 일보인들이 경제적으로 우세하였고 행정 자원도 편중하여 배분되어서, 남촌은 상대적으로 더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 자리잡아갔고, 이 곳에 점점 더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들자 한국인들은 계속 다른 지역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던 서울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현실

 

 

 

 

 

 

 

 

 

 

미군정의 수립

경성에서 서울로

과연................

 

 

 

 

6.25 전쟁 이후 50년 동안 서울의 배약적인 성장과 변화를 돌아보는 공간으로, 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셰계적인 거대도시로 발전하기까지 서울의 도시변화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다시 일어서는 서울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져있던 이렇게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했던 수많았던 사람들

 

 

 

 

6.25 전쟁 이후 항상 공사중 이었던 서울

 

 

 

 

ㅡ.ㅡ;;;

이노무..자슥..이..

 

 

 

 

우리집에도 저렇게 돌리는 티비와 흡사 거대 무전기를 방불케하는 무선전화기가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커다란 강아지가 물어다주는 광고가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 바X라는 전화였는데 처음 보는 무선 전화가 너무 신기해서 일부러 방으로 뛰어가서도 통화를 해보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뻐꾸기시계도 있다. 이정도면 굉장히 부잣집의 모습이었다고 기억된다

 

 

 

 

이제는 오늘 박물관 관람의 마지막 코스인 서울도시모형영상관' 에 도착. 이 곳은 현재 서울의 모습을 1/1500으로 축소해서 가로 21.5m x 세로 14.5m의 거대한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서울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지나가는 길 아래가 이렇게 모두 유리로 되어있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조금 걷다보니 은근히 재밌어서 더 즐기게 되는 기분이...^^ 지금 내 발 아래에는 잠실종합운동장이 보인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야구장 같은데...ㅡ.ㅡ;;

 

길이나 지리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았으면 정말 재밌었을텐데 너무 안타까웠다

남산 서울타워 빼고는 제대로 아는 곳이 없으니...

 

 

 

 

 

 

 

조명의 색이 계속 바뀌는데 참 이뻤다. 그리고 구경하는 내내 사람들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아서 정말 조용하게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이런 축복받은 박물관 관람이 또 어디있을까? 보통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들과 주로 함께하게 되는 것이 박물관 관람인데 정말 축복받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쁘다

여기는 어디?

 

 

 

 

하얗게 흐르는 것은 한강, 나도 이건 안다. 물론 다리들 이름은 조금 어렵지만...ㅡ.ㅡ;;;

 

 

 

 

 

 

 

야경사진 연습중

 

 

 

 

 

 

 

줌으로도 당겨보고

내가 제일 자주 보는 남산이다

자세히 보면 성곽길도 보인다

디테일이 짱!!!

 

 

 

 

아... 너무 잘봤다~~ 하면서 로비로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알게된 또 다른 작은 전시회 하나!

 

 

 

 

 

기증유물전시관에서 진행중인 '응답하라 1994, 그 후 20년' 이 바로 그 것이다. 왠지 추억이 방울방울 묻어날 것만 같은 확 솟아오르는 기대감에 절대 이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역시나!!!

들어가자마자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 당시 모든 남학생들에게 '다슬이앓이' 라는 무서운 질병을 퍼트렸던 '마지막 승부'. 지근도 약간은 어색했던 손지창의 슛 모습이라든지 또 절대 잊을 수가 없는 그 주제가 하며 앨범 자켓 사진 하나만 봐도 더오르는 기억들이 너무 많다.

 

또 그 아래에는 현식이형ㅜㅠ,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음악계에 거대한 한 획을 그은 서태지와 아이들. 신기하게도 저기 앞에 놓여있는 테이프들은 전부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다. 김건모, 듀스... 정말 이름만 들어도 옛 기억들이 저절로 떠오르는 기분이다

 

 

 

 

저 옆에 비디오도 우리집에 있었던 거랑 똑같았다. 엄마는 죽어도 못 사준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죽어도 사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 과감하게 엄마에게 딜을 요청했다. 그 당시 괜찮은 비디오의 가격은 50만원 정도였다. 버스타는 승차권이 학생 120원이었고, 안성x면이 100원 하던 시절이니 굉장히 큰 금액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당시 엄마가 원하는 가격을 맞추어서 비디오를 찾기위해 마산에 있는 거의 모든 전자제품 가게들을 다 돌았던 것 같다. 그 결과 339.000원이라는 충격적인 가격의 비디오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고 약속대로 집으로 안전하게 모시고 올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 영화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었다. 보통 비디오가게에서 새로나온 영화는 1박에 하나당 1.000원을 주고 빌려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내가 너무 많이 테잎을 빌려가는 편이고 본 영화를 또 빌려가는 경우가 꽤 많아서 비디오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가 방학동안 얼마나 테잎을 빌려가는지 장부에서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음) 세어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평균 방학 한 달 동안 빌려간 테잎의 수가 130-140개에 육박했고 가장 많이 빌려갔던 테잎의 제목은 플래시댄스(미성년자관람불가...)였다고 얘기해주셨다. 하루 평균 4-5개의 영화를 봤으니 정말 많이 본 것 같기는 하다

 

본전은 뽑았다

 

 

 

 

대빵만한 타임캡슐

 

 

 

 

추억의 장소를 둘러본 뒤 이제는 정말 나가려는데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또 이런 곳을 만나게 되었다

기증유물전시실 5실에서 진행중인 서울사진 전시전이다

 

 

 

 

지금의 모습도 물론 낯설지만 예전 서울의 모습은 더 낯설게만 다가온다

 

 

 

 

 

 

 

청계천 좁은 골목 안 풍경

 

 

 

 

추억의 놀이. 말뚝박기

족히 2m는 되는 거리를 날아와서 사뿐히 엉덩이로 착지하는 신공을 보이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엉치뼈 튀어나온 놈들이 제일 싫었다ㅡ.ㅡ;;;

 

 

 

 

박물관 로비에서 경희궁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는 중정휴게장.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간단하게 도시락 싸들고 와서 여기에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뒤돌아본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으로 나가면서 괜히 맘이 흐뭇~. 원래는 간단하게 서울의 역사만 둘러보고 가려는 마음으로 찾은 곳인데 멋진 모형으로 만들어진 서울도 만나고, 또 추억이 가득 깃든 물건들도 구경하게 되어서 기대했던 것 이상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곳 같다. 물론 너무 오랜시간 이 곳에 머무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주차비를 지불하게 됐지만ㅜㅠ.. 그 것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박물관 관람이 무료이니 그냥 관람료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끝!!! 역시 무한긍정주의다

 

오랫만에 다나온 박물관 투어! 물론 여행에 공부의 성격을 조금 섞어야 하는 것이 박물관 관람이기 때문에 조금 머리가 지끈거리고 나중에 후기를 작성할 때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곳이지만 항상 그 이상의 보람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곳이 바로 박물관인 것 같다

 

아직은 날씨가 조금 쌀쌀한데 따뜻한 박물관으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강력하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서울역사박물관' 이다

 

여러분의 소중한 공감하나

박물관투어도 그냥 확 질러버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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