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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서울여행] 경희궁으로 떠난 여행

 

방쌤의 서울여행 


서울여행 / 서울 가볼만한 곳 / 서울궁궐투어

경희궁


 

 

서울로 다시 여행을 떠나면서 이번에는 어디를 한 번 가볼까 잠시 고민을 했었다. 새로운 곳들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아직 내가 잘 모르는 숨겨진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곳이 바로 경희궁이다. 이전에 한 번 궁궐투어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부족한 시간 때문에 모든 궁궐들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겨두었던 궁궐들 중 하나인 경희궁을 제일 먼저 찾게 되었다

 

 

 

 

드디어 도착한 경희궁. 경희궁에는 따로 주차장이 없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주차장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차로 운전을 해서 찾아가는 경우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을 네비에 찍고 찾아가는 것이 편하다. 주차요금도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없을 것 같다. 일단 가까운 자리에 주차를 하고 경희궁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을 찾아 올라간다

 

 

 

 

숭정문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경희궁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높이 기단을 쌓아올려 월대를 만들어서 왕궁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숭정문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봉황을 새겨놓은 답도를 만들어 왕궁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돌계단의 양쪽에는 왕궁을 지키는 서수를 만들어 두었다

 

 

 

 

 

 

 

숭정전

경희궁의 정전이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에 해당하는 건물로서 왕이 대소 신료들의 조하를 받던 곳이다. 숭정전은 조선 광해군 9년부터 12년 사이에 지어진 궁궐로, 경희궁과 연관된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숭정전은 1926년 일제에 의하여 조계사로 이전이 되었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 안의 정각원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지만 너무 낡아서 이전이 어렵게 되었다. 그 후 1980년에 경희궁터가 사적으로 지정이 되어서 여러차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숭정전 2중 기단을 근거로 해서 1989년부터 6년에 걸쳐 경희궁의 본래 숭정전의 자리에 복원이 되게 되었다

 

경희궁에 있던 1백여 채의 건물들 가운데 흥화문, 황학정과 함께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이 정전 뿐이어서 경희궁의 건축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숭정문 위에는 다섯개의 잡상이

 

 

 

 

 

 

 

 

 

 

숭정전 위에는 7개의 잡상이 자리잡고 있다

 

 

 

 

 

 

 

살짝 들여다 보는 숭정전 내부의 모습

 

 

 

 

 

 

 

 

 

 

왕이 내려다 보던 숭정전 앞의 모습은 이러하였을까?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겠지?

 

 

 

 

 

 

 

드므

 

 

 

 

 

 

 

 

 

 

자정문

북쪽에 있는 후전인 자정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자정전

경희궁 숭정전 뒤에 있는 편전이다. 숙종이 승하했을 때에는 왕가의 관을 보관하는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고종의 어진과 위패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정원군의 아들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등극하였고 이괄의 난으로 창경궁이 불타게 되자 약 10년 동안 이 곳에서 머물렀지만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또다시 강화도로 쫓겨가게 되었다. 영조 때부터 경덕궁이라는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꾸어부르게 되었고 철종이 이 곳에서 정무를 처리하며 머물렀던 마지막 왕이고 그 이후에는 왕궁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안에는 아무 시설도 없이 텅 비어있는 모습이라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복원이 제대로 되어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했다

 

 

 

 

 

 

 

 

 

 

 

 

 

 

 

 

경희궁...

창건 당시에는 정전, 동궁, 침전, 나인입주처를 포함해서 총1.500칸에 달하는 건물들이 있던 곳이다. 그 거대한 규모에 걸맞게 나라의 중요한 궁궐의 하나로 중요시되던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그 많던 건물들의 대둡분이 절거되었고, 이 곳을 일본인들의 학교로 사용을 하면서 그 궁궐의 자취는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과정 속에서 궁내의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돠어 없어지고나 다른 곳으로 이전이 되기도 하였고 궁의 범위도 주변에 각종 관사 등이 들어서면서 더 줄어들게 되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에 이 곳은 서울중고등학교로 사용이 되면서 주변 대지 일부가 매각이 되어서 궁터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되었다

 

 

 

가슴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이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경희궁

 

 

 

 

그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느끼며 바라보는 경희궁의 모습은 왜 이렇게 슬프게만 보이는 것일까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서 이제는 경희궁을 나서는 길

 

나오는 길에 예전에 궁을 지을 때 사용하던 부재들의 모형들이 전시되어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마주치면 쉽게 지나치질 못하고 있다. 시멘트로 덕지덕지 만들어 놓은 것들도 있어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소중한 우리네 유산에 관한 정보들을 알려주는 것이니 반가운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우물반자

반자는 지붕이나 천장의 구조물을 가리기 위해 장식해서 꾸민 실내의 상부 구조물인데 일반 살림집에서는 볼 수가 없고, 궁궐이나 사찰과 같은 격이 높은 건물에서 주로 사용된다. 바둑판 모양의 틀을 짜고 그 가운데 청판을 끼워서 만든 천장인데, 청판에는 여러가지 단청문양을 그려 넣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것이 연꽃문양이었다고 한다

 

 

 

 

 

 

 

 

 

주심포

광화문 문루의 기둥 상부에 있는 공포부분이다. 공포란 처마의 하중을 받아 기둥에 전달하는 부재로서 장식의 역할도 하는 것으로 전통건축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귀공포

광화문 문루의 모서리 기둥 상부에 짜놓은 공포로 위에서 볼 때 십자맞춤과 함게 45' 각도의 맞춤부재까지 있어 가장 복잡하게 꾸며지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말들이었는데 천천히 둘러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니 그렇게 어렵게만 다가오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게 느껴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너무 소중하고 또 우리가 아껴주어야 할 문화유산인데 왜 나에게는 아직도 이런 장소들과 유산들이 낮설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동네에 널린 생긴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쁜 카페들은 너무도 스스럼 없이 편안하게 다가오는데...

 

나 자신도 어디서부터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잘 못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한 번은 가져봐야 할 것 같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번 경희궁 방문... 여행자로서, 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주는 계기가 된 듯 하다

 

다음에 서울을 찾는다면 경희궁은 다시 한 번, 조금 더 천천히 꼭 둘러보고 싶은, 아니, 느껴보고 싶은 곳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었네요

다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만들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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