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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아프다, 너무 아프다. 제주 알뜨르 비행장, 그리고 섯알오름


방쌤의 여행이야기


제주 알뜨르 비행장 / 제주 섯알오름

제주 4.3사건 / 알뜨르비행장 / 섯알오름

제주 알뜨르비행장, 섯알오름







아름다운 볼거리와, 맛있는 먹거리들이 가득한 인기 여행지 제주.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지금의 그 화려한 모습과는 많이 다른, 가슴 아픈 사연들을 유난히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제주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들을 한 번 해보려 한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4.3사건, 그리고 예비검속. 지금은 많이 알려져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하게 들리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사건들은 이미 종료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더욱 더 그렇다.


다크 투어리즘


화려한 것들만 쫒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재해 등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이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아픈 흔적들을 찾아, 그 상처들을 어루만지려는,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하려는 여행을 떠나고 있다.


이번에 내가 다녀온 곳은 제주 알뜨르 비행장과 섯알오름이다. 알뜨르, 아래로 보이는 언덕이라는 예쁜 이름, 그런데 이 알뜨르 비행장은 또 어던 아픈 우리 역사의 한 흔적을 담고 있을까?





  제주 알뜨르 비행장, 그리고 섯알오름



다녀온 날 : 2020년 2월 14일






파랑새 소녀상


알뜨르 비행장 주차장에 도착을 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대나무를 엮어 만들어진 파랑새 소녀상이다. 더 이상의 아픔이 없는 세상, 앞으로는 평화만 가득하길 기원하는, 또 상징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멀리에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산방산. 꼭 저 자리를 지키고 서서 여기가 제주임을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 정상부에는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의 모습도 보인다. 지금 이 아래에는 봄을 재촉하며 유채꽃들이 지천에 피었는데 참 신기한 모습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만든 비행장이다. 처음에 지었을 때는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으니 본격적으로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그 규모를 3배 이상 키우게 된다. 당연히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은 제주의 시민들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끌려와 노역에 동원이 되었을까?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괜히 마음 한 켠이 세게 아려온다.





지금도 20개 가까운 비행기 격납고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바로 옆에서는 농민들의 농사가 한창이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있는, 또 좋아하는 제주에 이런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 남겨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주력으로 사용했었던 전투기 '제로센'. 2010년에 조형물로 복원되어 격납고 내에 전시되어 있다.





조금 더 가까이 바라본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들





지금은 이렇게 평화롭게만 보이는 알뜨르 비행장인데





이렇게 평화롭게만 보이는 곳인데





그런 큰 아픔을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구나.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주차장 바로 옆에 난 길을 따라 200m 정도만 걸어서 들어가면 또 다른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예비검속'이라는게 정확하게 뭘까? 아직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를 지을 개연성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미리 잡아두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대한 탄압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법률이다.





영면을 기리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 올린다.


그 너머에는 검은 고무신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그 검은 고무신에서 쉽게 눈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여기 섯알오름은 제주 도민들의 예비검속에 이은 학살터로 알려진 곳이다. 예비검속에서 붙들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로 모르는채, 트럭 뒤에 실린채로 어딘가로 옮겨졌다. 그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도 느꼈던 것이다. 곧 자신들에게 닥칠 일들을. 그들은 이동하는 내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 옷가지 등을 차 밖으로 던졌다고 한다. 그 흔적들을 보고 남은 가족들이 자신의 유해라도 보듬어주길 바랬을까? 마지막에는 신고있던 고무신들까지 밖으로 던져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려 했었다.





드릴게 없어 조금 전 오는 길에 산 귤 하나를 올려 두었다.





제주 올레길이 지나는 곳





희생자 추모비 왼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런 모습의 장소를 만나게 된다. 과연 여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곳은 일제강점기 탄약고가 있던 자리이다. 일본 패망 후 탄약고는 폭파를 했고 저기 보이는 두개의 웅덩이 사이에 쌓여있는 흉몰스러운 덩어리가 그 당시 폭파 후 남은 탄약고의 흔적이다. 유해 발굴 과정에서 나온 탄약고의 흔적들을 모아둔 것이다.


위 사진에는 두개의 웅덩이가 보이는데 두 곳 모두 약간은 시간을 달리하며 제주 도민들의 학살이 있었떤 곳들이다.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분들은 그 시기도, 또 거주하는 마을도 서로 달랐다고 한다. 대정읍 일대에서 희생된 분들은 학살터 인근 묘역에 안장해, 그곳을 백조일손지묘라 부르고, 한림읍 일대에서 희생된 분들은 만뱅듸에 모셔 그곳을 만뱅듸 묘역이라 부른다 한다. 백조일손, 백명의 조상, 하지만 후손은 하나라는 의미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 들었다.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과 노역, 그리고 국가 권력에 의한 학살, 그 두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후,,, 깊게 한 숨을 내쉬어 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큰 아픔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뎠을까? 


그 큰 아픔 후에 맞이한 일제로부터의 해방인데, 그 이후 더 큰 아픔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과연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까?














  제주 알뜨르비행장, 그리고 섯알오름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유족들은 드디어 제대로 시신들을 거둘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한다. 하지만 그 이후 들어선 군부 독재 역시 이전 정권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기존에 있던 위령비를 훼손하고, 근처로의 출입 역시 강력하게 통제를 하였다. 그러면 과연 언제 그들은 정부로부터 첫 사과를 받았을까? 2003년이다. 2003년! 사건이 발생하고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지금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부터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그럼 이제는 끝인가? 그렇지 않다. 

예비검속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내륙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이 되었다. 그리고 '내란죄'라는 명목으로 수감생활을 하며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오게 된 것이다. 그 재판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판결이 언제 나왔는지 아나? 바로 작년 말이다. 이미 나이 아흔을 넘긴 분들이 대부분이고, 그 수도 이제 많지 않다. 눈 감으시기 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이야기 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그리고 용서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후에라도 평안하게 영면하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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