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재시인 이상이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글] 천재시인 이상이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

Posted at 2014. 7. 28. 05:44 | Posted in 『Thought & Photos』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에 있던 때 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길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든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쓰기로 한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1. 잘 보고 가요. 오늘도 상쾌한 하루 되세요. ^^
  2. 이렇게 종이위에 사랑을 표현하는 옛사람들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보기힘든
    내용들이군요..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
    • 2014.07.31 18:21 신고 [Edit/Del]
      말이..글이 참 이쁘다는 생각이듭니다. 무슨 화려한 미사어구들이 난무하는것도 아는데 가슴에는 하나하나 와서 박히니..마음이 묻어나는 글이라는 생각!
  3. ㅎ;
    이루지 못한 짝사랑.. 이런 글은 가슴이 아려와서 읽기가 싫어집니다.
  4. 이상의 필체를 여기서 보는군요.
    그의 작품을 보면서 천재적이지만 참 독특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쓴 편지를 보니 새롭네요.
    '이상'이라는 작가 하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자동기술법' 이렇게 기계적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쓱쓱 써내려간 필체를 보니 저 편지도 왠지 순식간에 써내려갔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귀한 글 잘 보고갑니다. ^^
    • 2014.10.03 15:19 신고 [Edit/Del]
      저는 왠지 작품에서 느껴지던 그의 모습과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즉흥적인것 같이 보이면서도
      맘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니...
      신기하죠^^
  5. 앗.. 이상이 직접 쓴 편지가 있군요.
    그의 필체를 처음 보는데,
    왠지 천재의 오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오감도 인가요? 그 난해한 시 제목이?..
    시 내용이 어떤지를 떠나서,
    그 시대에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이 그의 가장 천재적인
    면모가 아닌가 합니다.
    요즘 통 시라는 것을 읽어볼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 저녁엔 이상 시집이나 한번 꺼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 2014.12.04 14:15 신고 [Edit/Del]
      친필 편지는 저도 처음 접해서
      한참을 또 여러번 보았답니다
      그의 알려진 천재성과는 또 다른..
      순수한 사랑에 목메는 모습도
      나름 새롭게 다가왔구요^^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