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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경주여행] 계속되는 스탬프투어, 태종 무열왕릉

 

방쌤의 경주여행


경북여행 / 경주여행 / 경주 가볼만한 곳

경주 스탬프투어

무열왕릉


 

 

아시는 분들은 기억이 나실 수도 있겠지만, 작년 가을에 조금 무모하기도 했었던 당일치기 경주 스탬프투어를 도전했었다. 당연히 결과는 실패! 새벽부터 시작해서 나름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하루만에 끝을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감은사지와 같이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들도 여러군데 있고 석굴암 같이 꽤 오래 걸어야 되는 코스들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도저히 맞지가 않았었다. 또 감은사지 까지 가는데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를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법, 시작부터 주상절리 전 코스를 걸어버리는 바람에 사실 시작부터 조금 꼬이기 시작했던 여행이었다

 

사람이 시작을 했으면 당연히 끝을 맺어야 하는 법!

12군데는 이미 지난 가을에 다녀왔고 남아있는 곳은 이제 단 세개의 장소, 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또 거리상으로는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경주 양동마을이다. 세군데 밖에 남질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발걸음이 상당히 가볍다. 이제 슬슬 길었던 경주 스탬프투어를 마무리 지으러 출발한다

 

 

 

 

창원에서 1시간 30분 거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적당한 거리이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경주를 제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자주 찾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운 음악과 함께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경주 무열왕릉 주차장, 맑은 하늘의 오늘의 경주방문을 격하게 반겨주는 것만 같다. 물론 단순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무열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

?무문 인 것 같은데 정확한 한자를 모르겠다. 인터넷으로도 꽤나 찾아봤지만 정보가 나오지를 않는다. 나의 무지함에 안타까움이 절로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정말 공부를 조금 하기는 해야 할 것 같다ㅜㅠ

죄송합니다

 

 

 

 

입구 옆에 보면 무열왕과 문명황후가 어떻게 만났는지 그 스토리가 만화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꽤나 재미가 있으니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한 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 해드린다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태종무열왕릉비가 보관되어 있는 비각이다. 무열왕릉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고 현재 비의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겨놓은 머릿돌만 남아있다.

 

 

 

 

머릿돌과 받침돌, 또는 이수와 귀부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하기도 한다

'이수' 라는 것은 원래 뿔이 없은 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에서 사용하던 비의 양식인데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다 당나라 때 지금의 기본형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고려시대까지 한국 석비의 기본양식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당나라의 석비양식이 통일신라시대에도 수용이 되어서 많은 한국의 석비에도 이수와 귀부가 갖춰지게 되었다. '귀부' 는 거북이 모양의 비석 받침을 말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이가 목을 높이 쳐들고 있는 모습이 진취적이었던 신라인들의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좌우에 각 세마리, 모두 여섯마리의 묭이 서로 뒤엉켜서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의 앞면 중앙에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 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 이 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다

 

 

 

 

 

비각을 지나면 그 바로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무열왕릉

이 곳은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안치 한 곳이다. 김춘추는 신대의 첫 진골 출신의 왕으로 삼국의 통일을 이룩하려고 당과 연합하여 나당연합군을 결성,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다져 놓았으나 끝내 통일을 직접 이룩하지는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무열왕릉의 둘레로는 이렇게 소나무들이 울창하고 곧게 자라있는 모습이고, 크게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도록 길도 잘 만들어져 있다

 

 

 

 

 

 

 

왕릉 앞 단의 끝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새겨져 있던 문양인데 그 의미가 뭔지 궁금해서 담아왔다

 

 

 

 

군데군데 둘레돌로 보이는 깨진돌들이 일부 보이기는 하지만 후대의 왕릉들에서 보이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둘레돌은 보이질 않는다

 

 

 

 

 

 

 

신기한 모습으로 자라있던 소나무 한 그루

 

 

 

 

잘 가꾸어진 하나의 정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 멀리 쭉 늘어서 있는 고분군들이 궁금해서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즐기듯 걷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봤지만 늘 도착만 하면 걸음의 속도가 빨라진다

이것도 병이다

 

 

 

 

 

 

 

잠시 몇개 안되는 계단길을 올라서면

 

 

 

 

이렇게 뻥 뚫린 풍경이 펼쳐진다

 

 

 

 

 

 

 

서악리 고분군

아까 아래에서 보았던 길게 늘어서 있던 고분들이다. 이 고분들이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무열왕릉 뒤편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열왕과 아주 가까운 왕이나 왕족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봉분의 높이는 15m 미만이지만 둘레는 110-140m로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네개의 고분들이 줄지어 선 모습

 

 

 

 

 

 

 

무열왕릉과 서악리 고분군을 크게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입구로 나오는 길,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기 때문에 전부 둘러보는데도 30분이 채 걸리지가 않았다.

 

 

 

 

 

 

 

 

 

 

겨울에 즐겨 하게되는 그림자 놀이

참 혼자서도 잘 논다

 

 

 

 

나오는 길에 다시 만난 무열왕릉

 

 

 

 

 

 

 

비각은 이렇게 입구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단체 관광객들이 한차례 거대한 폭풍과 같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평화, 잠시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 이수와 귀부를 혼자서 지겨워서 그 모습이 외워질 때 까지 폭풍감상을 즐기다 나왔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니 무열왕릉의 입구 바로 앞에 저렇게 또 다른 봉분들이 자리한게 보인다. 알고보니 저 곳이 바로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라고 한다. 죽어서도 아버지의 곁에 머물고 싶었던 것일까? 그냥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삼국통일의 기틀은 모두 갖추어 놓았지만 직접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어찌보면 조금은 아쉬웠을 태종 무열왕, 그의 왕릉 둘레길을 걸으며 오늘 또 새로운 역사의 조각 하나를 내 가슴 속에 깊이 담아왔다

 

다시 시작된 경주 스탬프투어

소중한 공감 하나가 아마 큰 힘이 될껄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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