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쌤의 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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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홍매화
통도사 홍매화
지난 주말, 양산 통도사에 홍매화가 가득하다는 이야기가 슬슬 들려오기 시작한다. 사진들도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잠시의 고민도 없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통도사의 홍매화를 찾아서 또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창원에서 1시간 30분을 달려서 도착한 경남 양산의 통도사
의외로 입구는 한산한 모습이다
주차장에서 통도사까지는 1km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들어가는 길도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옆으로는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도 함께하는 곳이라서 청량함까지도 걷는 내내 함께 해주는 시원한 기분이 가득한 길이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걱정과는 달리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한적한 숲길을 혼자 편안하게 걸어가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좋은것 같다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도 즐겨보고
혼자 엄청난 크기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분을 만났다. 사이즈도 디테일도 정말 장난이 아니었는데 어디에다 전시를 하려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점 한점 찍어가며 그림의 빈 공간을 채워가는 모습이 주위의 풍경과도 또 그림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괜히 뒤에서 한 동안 말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석당간
당은 사찰을 나타내거나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 깃발을 걸어두는 대는 당간이라고 부르고, 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서 양 옆에 세우는 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당간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고 돌이나 쇠로 만든 지주들은 남아있는 편이다. 당간을 받치는 기단의 구조나 지주의 규모 등으로 미루어 고려 말의 것으로 주청된다. 당간지주는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만나게 되는 편이지만 석당간은 쉽게 마주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중앙에는 붉은 글씨로 '나무아미타불' 이라고 적혀있다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무는 귀의,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에 계시는 부처님을 말한다. 말 그대로 부처님께로 돌아가려는 신항의 출발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도원
부도원은 역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세워 놓은 곳으로 주로 절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안치한다. 통도사 부도원에 모셔진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3년 월하방장스님의 교시로 모두 모아 이전해서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모셔두었다
위쪽에는 부도들이, 아래쪽에는 탑비들과 통도사와 관련이 있는 공적있는 분들을 기리는 공덕비들이 자리하고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
영축이란 이름은 산에서 온 것인데 영축산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 을 설한 곳으로 유명해서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해서 통도사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그 의미를 알고 보니 단순히 매화만 쫓아서 통도사까지 달려온 내 자신의 모습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통도사는 사찰도 사찰이지만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통도사를 찾았다가 그 안은 둘러보지도 않고 옆에 흐르는 개울을 따라서 위쪽 끝 큰 도로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개울 옆 바위 위에 걸터 앉아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성보박물관
30년 정도 전에 지어진 건물인데 아직도 굉장히 깔끔하다. 입장료는 없는 곳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둘러보기시길
영축산통도사
이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필적으로 유명하다
사천왕을 모셔놓은 천왕문도 지나고
천왕문을 들어서면 그 바로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 원래는 조선시대 숙종 12년에 지어졌지만 원래의 건물은 아니고 중수된 것이다. 범종에서 범이 가지는 의미는 청정하다, 숙정하다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종은 '청정한 불사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통도사 하노전의 정경
통도사는 가람배치가 조금 특이한 편이다. 신라이래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된 산지도 평지도 아닌 구릉의 형태로 탑이 자유롭게 배치된 자유식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과 통도사 건물들 중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로전, 그리고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으로 구분이 되어있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된 후, 여러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요즘 여행을 다니면서 점점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저질러 놓고 간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화나는 마음이 좀처럼 삭혀지지를 않는다
만세루
만세루는 법회나 사찰의 주요행사 때 사용되는 구각이다
극락보전
극락전은 초창은 고려 공민왕 18년 성곡대사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현재의 극락전은 건물을 해체하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문서에 의해 순조1년인 1801에 중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200년이 훨씬 넘은 누각이다. 법당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불과 그 좌우에 협시보살로 관음, 세지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085년 고려전기에 건립된 3층석탑. 이 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에 기단의 맨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이 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이미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산전
영산전은 하노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영산전의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놓여있고 그 중앙지점에는 3층석탑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영산전의 초창연대는 아직 미상이나 현 건물은 숙종30년에 송곡대사에 의해서 중건 된 것으로 짐작된다
하노전에서 중노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드디어 첫 만남을 가지게 된 홍매화
너를 만나기 위해서 2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한 걸음에 달려왔단다
하얀 빛깔의 매화와도 잠시 인사를 나누고
아직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고는 할 수 없는 날씨이지만 조금 이르게 만난 아이들이 봄이 곧 다가올테니 너무 보채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달래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찰구경은 잠시 제쳐두고 매화구경 하면서 노느라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이제 더 구경하면서 놀기에는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지 만약 계속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분위기였다면 아마도 해질녘까지 저 곳에서 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정말...
정말 이뻤다...
향기도 너무 좋았다...
또 가고 싶다...
매화향기에 잠시 취했다가 이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중노전 영역을 둘러보러 출발
봉발탑과 용화전
봉발탑은 그 정확한 용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의 옷과 그릇을 모셔두고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이라는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서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 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용화전은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해있고 공민왕18년에 초창되었으나 당시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수 없다. 지금의 건물은 영조원년에 청성대사에 의해서 중건되었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약 2m 정도의 미륵불좌상을 봉안하였고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출현할 미래불을 의미한다
중노전을 지나 상노전으로 이어지는 길
통도사 상노전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다
오른쪽으로는 불이문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용화전과 그 가운데 관음전이 보인다
통도사 대웅전
상노전의 주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4년에 중건하였지만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고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아 통도사 대웅전은 참배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산 불단 뒤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위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대웅전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명부전
명부전의 명부는 저승, 곧 지옥세게를 의미한다. 즉 세상에서 살생을 하거나, 도적질 등 나쁜 짓을 하게되면 사후 명부의 십대왕으로부터 심판을 받게되고, 착한 일을 한 사람ㄷ르은 천상이나 인간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지장보살은 지옥 문전에서 언제나 눈물을 흘리면서 지옥으로 오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그래서 명부전을 다른 이름으로 지장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응진전
응진전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고 1667년에 지섬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건물이 원래의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나한이 범어의 아라하트(Arahat)를 한자로 나타낸 것으로서 그 뜻은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수행이 있다는 뜻인 ‘응공’ 또는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친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응진전의 뒤쪽에 구룡지와 함께 자리한 삼성각
삼성은 고려말의 고승이었던 지공, 나옹, 무학 삼화상을 지칭하는데, 지공은 인도로부터 우리나라에 온 범승으로서 당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대웅전의 뒤에 자리한 금강계단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석가모니 당시 누지보살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석가모니가 허락하여 기원정사의 동남쪽에 단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본래 통도사의 절터는 큰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자장율사는 이들 용을 교화하여 여덟 마리를 승천하게 하고 그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쌓아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옆에 있는 작은 연못에 구룡지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것 같다. 조금 쌩뚱맞기는 하지만
나오는 길에 만난 관음전과 석등 하나
관음전 내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였으며, 본래는 사찰의 중요한 유물이 이곳에 보관 전시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크게 유행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생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구원하기 위한 대비보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노전에서 상노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굳이 구간을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돌아다니면서도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다. 나만 그런건가...
불이문
불이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경내의 마지막 문으로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산문과 일주문, 천황문을 거쳐 들어오는 마지막 문으로 이 문을 통해 실질적인 가람의 중심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매화구경에 눈이 멀어서 들어오는 입구를 내 맘대로 조금 변경 해버렸다. 그래서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불이문을 나오는 길에 만나게 되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계속되는 반영놀이. 얼마 전에 봉암수원지에 다녀오면서 거의 중독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들어가고 나오는 길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 바로 통도사이지 싶다
겨울의 끝자락, 이제 곧 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조금 앞서 만나본 홍매화, 아직 날씨는 쌀쌀하지만 겨울을 깨치고 나온 소중한 하이들이라 그런지 더 없이 반가운 모습의 매화들이었다.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홍매화의 모습과 코 끝을 맴돌고 있는 듯한 그윽한 매화향기가 선명하기만 하다. 3월 중순 부터는 남쪽에서부터 천천히 개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꽃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즌이 다가온 것이다. 개나리로 시작해서 벚꽃, 매화, 진달래...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다가오는 봄, 다함께 꽃구경 떠나요~^^
소중한 공감하나
안누르면 동네에 폭우가 쏟아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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