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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궁궐투어
창덕궁
서울여행을 시작해서 벌써 세번째 목적지를 찾아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한 번 가볼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니 근처에 있는 곳들을 먼저 찾아가는 것이 제일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경복궁과 가까이 있는 장소들은 창덕궁, 창경궁, 종묘, 광장시장... 여러 곳들이 눈에 띄었다
그럼 어디로...
이미 시작을 궁궐투어로 시작을 했으니 일단은 가까이 있는 궁들을 모두 훑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바로 조선의 이궁, 가장 오랜 시간, 약 300년의 기간 동안 왕들이 머물렀던 궁
창덕궁이다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 역할을 하는 돈화문은 태종12년, 1412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 된 후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궁궐의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면 모두 똑같게만 보이는 고궁들의 입구인데
그래도 조금이라고 알고 바라보니 그 입구조차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일단 최종 목적지는 후원 입구이다
창덕궁을 구석구석 모두 돌아 본 후에는 창경궁으로 옮겨 갈 생각이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모습을 자랑하던 나무 두 그루
고궁의 기와지붕과 높게 오른 빌딩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림들이 어찌 보면 어색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게 또 다른 서울 도심 한 가운데에서 즐기는 궁궐투어의 매력이 아닐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정궁은 아닌 이궁으로 지어진 곳이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을 비롯한 모든 궁궐들이 불에 타서 없어지게 되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지어졌고, 고중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의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조선의 모든 궁궐들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들이 머물렀던 궁이 바로 창덕궁이다.
경복궁과 비교를 해보자면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주로 돠우대칭의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다면, 창덕궁은 산의 자락을 따라서 건물들을 모두 산의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를 해서 한국 궁궐 건축의 비정형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곳이다. 또한 숨겨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알려진 창덕궁후원은 다양한 모습의 정자들과 연못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궁궐들 중에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고, 자연과 너무 잘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아서 1997년에 유네스토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되기도 한 곳이다.
진선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창덕궁의 중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창덕궁이 처음 지어진 시절에 지어진 곳으로 생각은 되지만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최근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슨 촬영이 있는 것일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분들이 사진 촬영에 한창이었다
덕분에 나도 아름다운 한복을 차려입은 어여쁜 분들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여자분들이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니라, 한복의 고운 자태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담은 사진들이다...ㅎ
진선문을 지나서 인정전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사람 없는 한적한 길을 걷는 그 기분이란...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지는 순간이었다
인정문 위에 설치되어 있는 다양한 모형의 동물들
동물들이 많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많이 궁금했었다
예전에 티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서 더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부좌를 트고 멀리 내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시는 분들은 조금만 알려주세요~^^
인정문
인정문에서는 임금의 즉위식도 꽤 많이 이루어졌다
숙종, 영조, 순조, 철종 등 많은 임금들의 즉위식이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때의 모습이 정확하게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괜히 혼자 떠올려 보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 때의 이 곳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이런 나 홀로 상상의 모습들이 궁궐투어의 또 다른 큰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의 역할을 하는 인정전은 왕들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회국 사신들의 접견 등을 비롯해서 국가의 주요한 행사들이 이루어진 창덕궁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인정전 앞에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품계석이 쭉 늘어서 있는데 동쪽에는 문관들이, 서쪽에는 무관들이 중앙을 바라보며 도열을 하게 된다
품계석
정육품이 서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이 곳이다
이 곳은 동쪽이나까 아무래도 문관들이 서 있던 자리였다고 생각된다
인정전 내부의 모습
다른 장소들에 비해서 왕의 자리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듯한 느낌이 든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괜히 어좌의 뒤에 있는 그림에도 눈길이 가기도 하였다
인정전에서 바라보는 인정문의 모습
빌딩 숲과 이루는 풍경도 은근히 조화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선정전
선정전은 평소에 임금이 머물며 신하들과 국사를 의논하던 편전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편전이라고 하면 괜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쉽게 생각하면 왕의 사무실 역할을 하던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 고궁이나 오래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들을 찾게 되면 너무 어려운 단어나 이야기들로 자세히 읽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든 부분들을 수정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한자어 보다는 조금 쉬운 우리 말로 설명을 바꿔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중앙에는 임금이 앉고
그 좌우로는 문관과 무관이 자리를 잡았다
그 한 쪽에는 사관이 앉아서 국사에 대한 논의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기록하였다고 한다
선정전 내부의 모습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주 보이면 보일수록 그 의미가 더 궁금해진다
분명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이들은 절대 아닐텐데...
희정당
희정당은 원래 임금의 침실로 사용되던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회의실의 역할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었던 시절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이 되었던 곳인데 지금 여기 보이는 이 건물은 1920년에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그대로 옮겨서 다시 지어놓은 곳이라고 한다
참...일본은...
우리나라 역사에 참 많은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분노가 갑자기 끓어 오르기도 하고...
그 암울한 역사가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이루어졌었다는 것이 더 슬프기도 하다
모든 역사의 흔적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 또 화가 나기도 한다
선평문
희정당에서 대조전으로 통하는 입구이다
평화를 널리 펼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선평문은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을 함부로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높은 계단 위에 지어져 있다고 전해진다
세심한 배려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구조이다
대조전
가운데 보이는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뉘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부인데 이렇게 유별나게 별거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물론 나의 짧은 생각이니 다른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성정각
성정각은 조선시대 세자가 거주했었던 동궁에 위치했던 곳으로 세자가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다
성정이라는 이름은 공자의 유교 경전인 대학에 나오는 성의와 정심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하고, 학문을 대하는 정성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한다.
성정각으로 들어서면 남쪽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이듯 보춘정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고
그 동쪽으로는
위의 사진에서 보이듯 희우루라는 현판을 달고 있고
한때는 이 곳이 내의원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성정각 뒤쪽에 위치한 관물헌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에 있었는데 1910년 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하였다
내의원은 궁중의료기관으로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곳으로 내국이라고도 불렀다.
궐내각사는 오아과 황실을 보좌하던 궁궐 내 관청들을 모아둔 곳이다
관청들은 대부분 궐 밖에 있었지만, 왕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궁궐 안에 세운 관청들을 궐내각사라고 불렀다
인정전 가운데로 흐르고 있는 금천을 경계로 해서 오른쪽에는 약방, 옥당, 예문관이 위치하고 있고
왼쪽으로는 내각, 규장각 등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장소들이 서로 얽혀서 미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이 모두는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기 위한 근위 관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규장각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변에 세워진 규장각은 조선시대 왕실 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었지만
고종 사후에는 그저 단순한 도서관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가, 그마저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던 일제강점기에는 모든 소장 도서들이 일본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지면서 규장각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이 헐리고 도로와 잔디밭으로 변해버렸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물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지어진 곳들이다
일본... 참 가까이 하려고 해도 절대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나라이다
혼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곳을 걷고 있는 것일까?
내가 느끼는 것과 조금은 비슷한 마음을 함께하고 있는 분일까?
검서청
출판될 서적의 교정과 서사를 맡았던 검서관들이 근무했던 곳이다
선원전
조선 시대 태조 이하 역대 임금과 왕후의 영정을 봉안해 놓은 곳이다
전실청 옆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 한 그루와 선원전이 만들어내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늘 붐비는 창덕궁인데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모습의 선원전의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롭게만 느껴진다
오늘 하루 종일 들었던 중국어와 일본어가 유일하게 들리지 않았던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었던 곳이다
아마 다음에 다시 창덕궁을 찾게 된다면 꼭 제일 먼저 찾아가게 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지당
이름을 정확하게 몰랐는데 공수래공수거님께서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꾸뻑!!!
양지당은 선원전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를 하러 갈 때 임금이 머무르는 어재실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모르는 한자들이 너무 많아서 사찰이나 궁궐 관련 글을 쓸 때는 생각보다 어려운 점들이 많다ㅜㅠ
약방
이 곳에서는 한의사들이 관람객을 진료하고 침, 뜸, 한방 물리요법 등을 시술하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오늘은 굉장히 한적하게 보이는 약방의 모습이다
비둘기들에게 인기 만점인 한 어린 소녀
뒷태가 아주 매력적인 시크한 아이였다
나름 많은 준비를 하고 찾았었던 창덕궁이다. 하지만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 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고 찾더라도 항상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곳이겠지만
다 둘러보고 뒤돌아 나오고 나니 떠오르는 곳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혹시 오랫만에 서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이 앞서서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또 너무 서두르다 보니 중요한 많은 것들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들이 밀려오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제부터는 보고 싶은 곳들을 다 둘러보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고 조금은 여유있게 천천히, 또 깊숙히 하나하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다
이제 후원을 둘러 볼 차례가 되었는데
창덕궁 후원은 개인적으로 아무 시간에나 들어가 볼 수가 없는 곳이다
안내하시는 분과 함께 동행하는 그 시간까지는 아직 30여 분이 남아있고...
간단하게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면서 그 비밀의 정원, 후원을 만나게 될 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음 글은 60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지금까지 여전히 비밀의 정원으로 숨겨져 있는 왕들의 휴식처,
바로 창덕궁 후원을 찾아가서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나만의 이야기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소중한 클릭 하나
칼바람 속에서도 방쌤은 앞만 보며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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